저는 어쩌다 보니 인생의 대부분을 정작 태어난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외국생활 중 대략 반은 뉴질랜드, 나머지 반이 현재 살고 있는 일본인데요, 배경이 이렇다 보니 심심치 않게 받게 되는 질문이 하나 있어요. 해외동포 여러분들은 아마 거의 다 마찬가지 일겁니다. 바로, ‘인종차별을 경험해 보신 적은 있으세요?’ 라는 질문이지요.
오늘은 이 ‘인종차별’에 대해, 직접적 경험을 통한 저 나름대로의 의견을 말씀 드려보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의 보다 쉬운 이해를 위해 미리 알려드리고 싶은 점이 있어요. 뉴질랜드는, 지리적으로 호주와 함께 대양주에 속하면서, 북미나 유럽같이 ‘차별’ 하면 곧바로 떠오를 정도의 대표적인 지역은 아닐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건국의 근간이 원주민인 마오리족과 거래아닌 거래를 행한 영국계 백인들이므로, 일단 뉴질랜드를 서양의 사례라고 보겠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영어권 나라들이란게 어디를 가나 여러모로 보아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점도 하나의 이유라고 하겠습니다 (특히 영국, 호주, 뉴질랜드는 진짜 비슷하지요). 덧붙여, ‘대일본인’ 이라는 비뚤어진 우월의식 탓에, 과거 주변국가들을 빼앗고 같은 동양인들을 대량학살한 이웃나라 일본을, 동양에서 대표적으로 차별을 하는 나라로서 편의상 정하고 써내려 갈테니, 그 점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나라의 사람들은 어떻다더라’ 를 말할때에는, 먼저 그 나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일반 서민들이 어떤가 를 말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흔히 말하는 ‘상위’ 엘리트 분들의 세계는, 저나 여러분들이나 애초에 범접할수가 없는 곳이기도 하고, ‘금수저’ 분들이란 전체 인구 비율로 보면 항상 극소수이고 특수하기 때문에, 그 분들에게 있어서의 인종문제는 어떻다고는 말씀 드릴 입장도 아니며, 이 글을 읽어주십사 하는 타겟층도 아니므로 논외라는 점도 밝힙니다.
이 차별이라는 주제가 거론될 때마다 지겹도록 되풀이되는 논리, ‘그런건 차별이다 아니다’ 를 먼저 살펴봅시다.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사람들은 보통 피해자이건 가해자이건 트러블에 일단 휘말리면 서로 자신이 옳다 주장하지요. 그 트러블이 단순히 개인간 문제로 끝나지 않고 법적으로 까지 번질 경우, 정식으로 처벌을 하려면 해당 국가는 각자 정의하고 있는 차별의 기준에 준하여 관련 사건사고들을 들여다 볼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대한민국이 정하고 있는 인종차별의 정의를 봅시다.
인종차별 人種差別
인종적 편견에 의해 특정 인종에 대해 사회적, 경제적, 법적 불평등을 강제하는 일
다음 한국어 사전에서 발췌
다음은 미국의 사전이 정하고 있는 정의입니다.
1. The belief that race accounts for differences in human character or ability and that a particular race is superior to others. 인종에 따라 성격이나 능력의 차이가 있거나 특정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는 믿음
2. Discrimination or prejudice based on race. 인종에 근거한 차별 또는 편견
American Heritage College Dictionary에서 발췌
이렇듯 사전적인 의미만 보면, 그럴싸하게 보임과 동시에, 섣불리 판단하기도 어렵게끔 표기가 되어 있네요.
그래서 저는 저의 뉴질랜드 시절을 회상하며 정리를 좀 해보려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단 한 번도 인종차별을 겪은적이 없습니다. 만약 이것을 단순한 잘난척이라 생각하신다면, 제가 주장하는 요점을 여러분들이 놓칠 수가 있음은 물론, 주제 자체가 매듭을 짓지 못한 채 끝이 나버립니다. 제가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이민 초기 저는 영어도 그리 잘 하지 못했고, 체구는 작았으며 숫기마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차별은 당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과연 대다수의 백인들은 일상생활에서 우리 동양인들을 어떻게 볼까요? 서양이 제작한 각종 컨텐츠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저희들은 무조건 다 얼빵하고 고지식하게 생각되어, 학생들은 학교에서 놀림을 받고, 어르신들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옮긴다며 길거리에서 돌을 맞고…실제로 진짜 그럴까요? 중요한 점은, 그런 경우가 드문것인가 아니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인가 하는 것 일겁니다. 왜냐하면, 남의 나라에 살면서 가끔 일어나는 단순한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에 의한 장난’ 정도라면, 솔직히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끔씩만 벌어진다고 해서 차별을 당해도 싸다는 것은 절대 아니구요. 단지, 위에서도 말씀드린 차별의 정의라던지 기준이 워낙 애매모호해서 매번 논란이 되기 때문에, 그러한 사건사고가 만약 자주 일어나는 일도 아니고, 심각한 피해를 입은것도 아니라면 일단 그것만으로도 저는 개인적으로, 차별은 아니라고 본다는 말씀을 조심스레 드리는 겁니다.
자, 그러면 백인들의 언행이 정말 ‘차별인지 아닌지’ 심각하게 따져야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는, 먼저 억울한 쪽 본인이 실제로 그들의 ‘원’안에 깊숙히 들어가 섞여서 생활하고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몸은 서양에 살고 있으면서, 매일 접하는 사람들이 죄다 한국인뿐 이라거나, 이민력이 긴 것에 비해 영어가 서툴다거나, 읽는 책, 보는 영상, 듣는 음악등 취미마저 죄다 한국것이라면, 목소리 높이는 인종차별이 과연 현지인들에게 어느 정도 와닿고 신빙성 이 있냐, 이겁니다. 외국에서 생활을 하면서, 완전히 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글로벌한 사고를 가지고 있고, 현지인 친구들도 있어서 평소에 잘 어울리며, 현지의 언어로 그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다같이 납세하면서 살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나 무지막지한 인종차별의 피해를 입을 확률이란, 도대체 얼마나 된다 생각하시는지, 저는 교포분들에게 묻고 싶네요.
아, 92년 LA 폭동이요? 그리고 몇년전 ‘Black Lives Matter’시위의 촉발원인이요 ? 그런건 당연히 인종차별이죠. 확실히 구별이 되셨죠 이제, 그런게 바로 인종차별 입니다. 제가 지금 말씀 드리려는 것은 다른 문제 입니다, 이것은 어쩌면 외국에 살고 있는 저희 동양인들이 문제일 수도 있구요.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들이란, ‘잘 모르는 것’ 또는 ‘자신들과 다른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결코 특별하거나 특이한 동양인이 아니에요, 그저 그들과 자주 어울렸던 것 뿐. 그러다보니 자연히 저의 존재는 ‘잘 모르는 것’이 아니게 된거죠.
이주 초기에 영어가 조금 딸리는 것은, 어찌보면 외국인으로서는 당연합니다. 반대로 그럼, 영어권 국가에서 영어외의 언어를 조금이라도 구사할수 있는 백인들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요? 남의 나라에서 놀림을 받을때, 이 정도 팩트 쯤은 그들에게 반박하면서 헤쳐나갈수 있는 배짱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봅니다. 그 누가 외국 생활이 편하기만 하다는 거짓말을 하던가요? 바로 이런 점들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뉴질랜드 시절, 총 6년을 사귄 뉴질랜드인 여자친구가 있었습니다. 푸른 눈에, 금발이었죠. 그래서 제가 잘났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고, 어떻게 그 여친을 만났었나 그딴것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주목해 주십사, 하는 것은 제가 그 여친과 모두 백인이었던 당시 동네 친구들, 대학 동기들, 회사 동료들과 오랫동안 함께하며 인종문제에 관련해 무엇을 깨달았나 하는 것이지요. 감히 여기서 말씀드리면, 그들 대다수는 기본적으로 차별을 하지 않습니다. 결국 서로 불편해 지니까요. 그런데도 우리는 심심치 않게 헤이트 크라임 이라던지, 피가 거꾸로 솟는 뉴스는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접합니다. 제 인생에서, 인종차별을 곧잘 주장했었던 주위의 동양인 분들에게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몇가지 있었어요. 참고로, 이 글의 표제 “어, 여자친구가 백인이야?!”도, 당시 같은 대학에 다니던 한국인 형이 저에게 한 말이구요 (당시 옆에 있던 여친이 불쾌해하던 기억이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그 형은, 평소에도 툭하면 차별을 당했다며 자주 교직원실에 들락거리던, 매사에 불평불만이 많은 형이었습니다. 다음을 보시죠.
- 영어를 못한다; 현지에 와서까지 한국에서 하듯, 한국인이 경영하는 학원까지 다니는 분들도 봤어요. 저는 현지 언어는 한 번 와버린 이상, 죽기살기로 터득해야만 살아남는다고 믿어요. 현지이기에 가장 터득하기도 쉬운 환경이기도 한데 말이죠. 왜 바다까지 건넜으면서 열심히 안합니까. 단지 유학으로 오셨으면 포기하고 돌아가버리면 그만이겠습니다만, 이민으로 살려고 가족이랑 다 오셔서, 마냥 너무 어렵다고만 말할 처지가 되는지를 묻고 싶어요.
- 사람을 외모로 판단한다; 만나자마자 머리가 크다, 귀엽다, 똑똑하게 생겼다, 키가 몇이냐, 문신이 무섭다 등등, 애초에 여러 모습을 한 여러 인종들이 모여 사는 문화에 대한 이해 자체가 없습니다. 제가 단언컨데 그런 발언들, 아주아주 이상하게 볼겁니다. 네, 처음 만나는 여성 분이 이뻐서, 그래서 뭔데요, 어쩌실건데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분들은 한 번 그렇게 직접 백인 여성에게 다짜고짜 ‘아이고 이쁘다’ 한번 해 보시죠, 어떤 반응들인가.
- 국뽕끼가 있다;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은 너무 아름답습니다만, 그 조국에서 마음이 안 드는 점이 있으니까 어쨋든 외국에 살러 오신 것은 아닙니까? 정도껏 하셔야지.
- 서양 음식은 느끼하다며 꼭 김치가 있어야 된다 말한다; 먹는것까지 안맞으면 솔직히 이민생활 오래 못갑니다. 먹는거 무시 못해요.
- 애인이나 친구, 동료등 모든 인간관계가 본인 나라 출신이다; 백인여자들은 너무 크다, 기가 세다, 암내가 난다 등등, 참 별 말 다 들어봤습니다. 네, 보통 크고 기세고 암내도 나지요. 마음에 안든다는 것은 어쩔수가 없지만, 그런 태도와 표정은 그들에게도 보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러시면 백인들도 우리들한테서 마늘냄새 난다하고, 소극적이고 빈약하다고 놀립니다. 멀리하고 싶은 사람을 억지로 가까이 하라 강요는 못하지만, 그렇게 생리적으로까지 무조건 못 받아들일 정도면, 왜 외국까지 살러 왔는지? 그저 여행으로 충분하잖아요.
- 밖에 잘 안나온다; 키보드 워리어, 게임중독들이 많았던거 같습니다. 그리고 당시 영어권 나라까지 와서 ‘하두리’ 사진을 찍는다던가, 요즘은 또 어플로 굳이 현지에 있는 한국여성분들만 집중적으로 노리는 분들중, 정작 그나라의 사회인으로서 제대로 생활하시고 계신 분들은 지금껏 본 적이 없네요.
- 끼리끼리 뭉쳐 다닌다; 곱게 보일리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호의적으로 다가가려던 현지인들도, 너무들 그러시다보면 당연히 ‘쟤네들은 원래 다 저래’ 라는 식으로 편견을 가질수 밖에 없어요. 한국에 살러온 중국분들이 눈꼴시다는 분들도 계실거 아니에요, 똑같습니다.
어느 정도는 살러온 나라에 맞춰야지요. 도저히 이해가 안되더라도 나라가 틀리고 문화가 틀린데, 최소한 싫다는 얼굴은 보이지 말아야 한다 생각합니다. 글쎄 본인 나라가 아니라니까요? 태어난 조국에서는 어땠었는지, 이제와서 그리워 해봐야 뭐합니까? 한번 오셨으니 현실을 생각하고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해야지요.
유형 A. 외국에서 태어나 자란 분들-일단 무엇보다 언어의 장애가 없기에, 현지에서 학업을 마치고 취직을 하는데 거의 문제가 없습니다. 차별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가장 적거나, 아예 없는 계층이라 하겠습니다. 현지인들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고, 사회적인 참여도 활발하며, 가장 그 나라 사회에 깊숙히 파고 들어 있으나, 본인의 아이덴티티에 관해 고뇌하고 계신 분들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유형 B. 10,20대에 이민오신 분들-현지화에 성공을 하느냐 마느냐가, 가장 극명하게 갈리는 층이라 하겠습니다. 성공하신 분들은 훗날 현지만의 혜택을 누리며 조국과의 차이를 비교해가며 즐기면서 지내고, 실패하는 분들이야말로 인종차별에 타겟이 되고 마는 어정쩡한 경우가 많습니다. 연령대를 감안해보면, 어지간히 목적의식이라던지 인생철학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되는 청소년 시기에 오셨기에, 이들에게 있어 이민은 거의 뭐 인생을 건 도박이라고 할까요? 학업뿐만이 아니라 문화의 차이등, 한번 현지화 되기까지가 가장 힘들며, 그만큼 또 이런저런 고생을 가장 많이 하는 분들이라 하겠습니다.
유형 C. 3,40대에 오신 분들-어느 정도 어학력이나 경제력이 뒷받침 되신 후 도착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젊은 시절처럼 패기만 무조건 끓어넘치는 것만이 아니라, 설사 문제에 휘말리던들 현명하게 헤쳐나가는 경우가 많지요. 단, 그중에는 조국에서 일이 안풀린다고 도피성으로 무조건 오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본인의 영어나 능력탓에 제대로 된 직장에서 일을 하지 못하면서 불평불만은 심하고, 솔직히 언어만이라도 제대로 배울 생각이 있어서 어느 정도 현지인들과 어울리려 노력이라도 한다면, 그만큼 차별을 겪을 확률도 적다고 보는데, 항상 혼자, 또는 떼지어 몰려다니며 슬리퍼를 걸레같이 끌고 길거리에서는 침 찍찍뱉고 다니고, 게다가 어찌어찌 기초생활수급까지 받아서 생활하시면… 유형중 두번째로 차별을 겪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유형 D. 50대 이후, 또는 인생의 황혼기에 오신 분들-일본에는 없는 제도이지만 뉴질랜드의 경우, 투자이민등으로 오셔서 일단 금전적인 면에서 여유가 있기에 마음에도 여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언어능력이 떨어지는 분들이 많은 계층이기에, 일부 몰지각한 현지인들의 부러움이 그만 증오로 바뀌고 마는, 그래서 더욱 인종차별을 당하기 쉬운 까닭에 참 안타까우면서도 억울한 계층이라 생각됩니다. 이분들이 당하는 차별이야 말로 절대 용서해선 안될, 그런 종류의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어떠신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형 A와D가, 현지인들의 첫눈에는 다 똑같은 동양인이라, 이겁니다. 그럼 왜, 차별이라고 느끼는 정도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일까요? 다음은 저 자신의 경우를 분석해 본 것입니다.
- 기타를 쳤다 ; 당시엔 제가 음악적으로 미숙해서, 한국음악을 저급하다 생각하는 편견이 심했었습니다. 그런데 백인들이란 기본적으로 거의 모두가 록, 기타를 좋아하더군요. 저에게는 이것이 기숙사 도착 첫날부터 거리를 좁히는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던듯 합니다.
- 현지인과 같이 스포츠를 즐겼다 ; 같이 땀을 흘리고 뛰면 친구가 되는거, 특히 남자분들은 아실겁니다. 학교 체육시간마다 몸이 아프다며, 땀 흘리는게 싫다며, 벤치에 앉아 팔짱끼고 쉬는 학생들은 죄다 동양인이던 기억이 나요. 저는 운동신경이 별로 좋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그냥 일단 참가는 했었습니다.
- 한국인 친구가 없었다 ; 저는 중,고등학교를 합쳐 기숙사에서 4년을 지냈는데, 그 곳이 동시에 럭비 장학생들을 위한 합숙소 이기도 해서, 원래 럭비에 그다지 진심이 아닌 동양인들이 적었던 이유도 있겠습니다. 당시 홈스테이를 하던 한국인 유학생 형들이 오히려 저를 백인들이랑 논다고, 재수없다고 매점뒤에서 멱살을 잡고 죽인다 협박을 한 적은 있어요.
- 하루 종일 영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 바로 위 한국인이 없었다는 이유랑도 연결됩니다. 초기엔 저도 영어 스트레스 때문에 홍정욱님의 7막7장을 읽으며, 사전을 통채로 외우려 하는 등 여러 시도는 해 봤지만…어쨌거나 편하게 한국말을 하고 싶어도 기숙사라는 특수환경 때문에 좀처럼 한국인을 만날 수가 없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 한국을 그다지 그리워 하지 않았다 ; 지금은 아예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지만, 한국에서 중학교를 다녀본 저는, ‘한반도 바다의 따뜻한 물에서는 삼치등이 잡힌다’는 사실도 배워야 하고, ‘폴리염화비닐수지’ 따위에 대해서도 필수과목으로서 무조건 암기를 해야만 한다는 당시 한국의 교육이, 도저히 납득이 안가던 그런 시절 이었습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요, 뉴질랜드 학교에서 첫 생물 시간에, 그저 장난으로 제가 ‘인간의 정자를 돼지의 난자에 강제수정 시키면, 역시 돼지인간이 태어나는 겁니까’ 라며 킥킥대며 선생님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선생님이 너~무나도 진지하게, 유전학적으로 ‘왜 돼지인간이 성립할수 없는지’를 하나하나 설명해 주시는 바람에, ‘아, 이제 까불지 말고 공부라는걸 한 번 제대로 해보자’라는 생각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던, 그런 기억이 나네요.
만약에 제가, 외국까지 와가지고 당시 한국에서 화제였던 룰라, 김건모만 듣고, 다들 럭비를 하는데 저만 야구를 하며, 한국인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한국애들이랑 무리를 지어 힙합바지로 동네를 쓸고 방학때마다 한국에 들락거렸다면, 과연 그래도 원만한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었을까요? 그 고만고만한 영어실력으로, 제대로 된 회사에는 들어갈 수 있었으며, 설령 어찌어찌 사회인이 되었다 치더라도 인종차별은 안 당했을까요? 어느 재수 없는 날, 차별을 당한뒤에는 최소한 자기 주장은 영어로 할 수 있었을까요?
오해하지 마십시오. 한국음악, 한국말, 야구등을 다 포기하고 갑자기 관심도 없는 기타도 배우고 조국을 완전히 잊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애시당초 왜 본인이 외국에 왔는지, 그리고 이미 와버린것이 현실이라면 현지문화와 어느 정도 타협을 함으로 인해 얻을수 있는 이득을 생각하셔야죠. 그나라 사람들 기분에 무조건 맞추라는게 아니라, 어찌됐건 타국에서 온 입장이라면, 그 나라에 대해 어느 정도는 공부도 하시고 이것저것 생소한것들도 받아드릴 각오는 하셔야죠. 언어도 기왕이면 한 번 왔으니 한국말, 영어, 둘 다 잘 해야죠! 한국에 놀러 가는것도 좀 몇년만 참으시다가 어느 정도 외국에서 뭘 좀 이뤄논 뒤에, 그 때 금의환향하시면 그게 뭐가 문제 입니까?
뉴질랜드 시절, 저는 몇 개의 밴드 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중에는 오클랜드 지역에서 치안이 안 좋기로 소문난 사우스 오클랜드의 ‘Mangere’ 라는 곳에서 결성된 펑크 밴드도 있었는데요, 그 밴드가 어느 날 베이스 자리가 비었다고, 기타 가게에 붙어있던 제가 밴드를 구하는 광고를 보고 전화했다며, 한 번 보자는 겁니다. 본인들 동네까지 오라는데, 솔직히 긴장했지요, 하지만 당시 저는 철이 없어서 부족한 실력으로도 어쨌든 음악으로 먹고 살길을 찾는데 눈이 벌게져 있었기 때문에, 지역이 지역인 만큼 혹시 이 사람들이야말로 제대로 된 ‘진짜 펑크’를 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순전히 음악적 호기심으로만 오디션에 응했더랬죠. 밴드랑 처음에 딱 맞딱드리는데, 리더 겸 보컬이 아니나 다를까, 전형적인 스킨헤드에, 각종 무시무시한 피어싱, 온몸이 뭐 만화책이라 불러도 될만큼 문신으로 뒤덮여있던,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그 분의 첫 마디가 ‘…동양인 이었나?’ 였는데, 왠지 표정이나 목소리의 톤에서 별 싫다는 감정은 못 느끼겠더라구요. 그래서 용기를 내어 ‘뭐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 쪽에서 전화했을때 딱히 나의 인종에 대해서 물었던것도 아니고’ 라고 받아쳤더니, 의외로 어서 앰프랑 내려놓고 준비하라는 겁니다. 그리고는 결국 그 밴드에 가입해서 재미있게 한 3년은 활동을 했었지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저 허허 우습지만, 당시 저 빼고 나머지 멤버 3명은 전원 만화책에 헬레이저 같은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지방소도시에까지 나름 투어까지 돌면서, 같이 먹고 자며 사이가 많이 돈독해 졌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밤. ‘Hamilton’이란 곳에서 공연을 마치고, 다들 모텔에서 술을 마시는데, 리더가 느닷없이 그러는 겁니다. ‘나는 원래 동양인들 싫어했었다, 그리고 공식 백인우월주의단체의 회원이었다’ 고. 제가 흠칫 놀라자, ‘그런데 너랑 밴드 생활을 같이 하면서 많은걸 깨달았다, 결국 다 똑같더라. 나는 너희들이 우리들이랑 다른줄 알았다. 너희들이 먼저 우리를 싫어하는줄 알았다. 남의 나라에 와가지고는, 우리가 아무것도 안했는데 슬슬 피하고, 영어도 못하는게 아니라 아예 안하려 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는 태도가 싫었었다‘ 고 하더군요. 그 분이 또 그러더라고요, 그걸 깨닫는데는 오랜세월이 걸렸다고. 자기 주위에도 같은 생각의 사람들이 아마 많을것 이라고. 각국의 교포 여러분들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저 어느 이름없는 펑크 밴드의 일화인가요.
또 문신이야기가 나옵니다만. 그 시절 하루는 저희 어머니가, 자주 애용하시던 ‘오클랜드 시내버스’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길거리에 멈춰 서버리던 일이 있었습니다. 승객들이 일단 모두 내려서 각자 알아서 갈길을 모색하는 상황에서, 저희 어머니 앞자리에 앉아있었던 ‘마릴린 맨슨’ 비슷한 차림의 한 여성분이, 어머니한테 말을 걸어 오더랍니다. 어디 사냐고, 어머니가 동네를 얘기하자, 자기도 마침 그 옆동네인데, 지금 남자친구한테 전화를 걸어 차로 여기까지 데리러 오라 할테니 , 그냥 기다리라고 했다는 겁니다. 저희 어머니는 솔직히 좀 꺼려지고 무섭기도 해서 속으로는 거절하고 싶으셨다는데, 이미 남친분이 차로 오고 있는 중이었던거 같아요. 시간이 좀 흐르자, 역시나 문신으로 전신을 도배하고 자동차 안에서 담배를 뻑뻑피우며 그 남친분이 나타나, 결국 그 분 차로 어머니가 무사히 집에 돌아오신 적이 있어요.
그 날 저녁 식사를 하는데, 어머니가 저에게 갑자기 그러시는 겁니다. ‘나는 솔직히 오늘 인종차별 그런거 당할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그 사람들이 너보다 더 친절하고, 말도 너보다 더 많이 하더라 이 무심한 놈아!’ …뭐, 그저 묵묵히 밥만 먹던 저는, ‘뭐여 갑자기 좀 억울하다’..고 생각하려는데, ‘이제부터 니 무서운 그 메탈 친구들이나, 밴드 동료들도 다 집에 데려와도 좋다, 나는 지금껏 걔네들이 나쁜애들 인줄 알았어.’…라고 하시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이처럼 단지 외모만 보고 우리쪽에서 먼저 피하면, 그들도 물론 기분이 나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아닌 남의 땅에서 현지인들을 외면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그 쪽으로 하여금 생각에도 없던 인종차별을 하고 싶게끔 부추길 수도 있다고 봅니다. 저희 어머니는 현재도 20년 이상을 뉴질랜드에 살고 계십니다. 차별은 한 번도 겪어 보신적은 없다 하십니다. 뉴스에서 접하는 그런 불상사들은, 극히 일부라고 하십니다…
드디어 일본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동경에는 ‘시나가와 입국관리국’ 이라고,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비자등을 신청하거나 연장할수 있는 공기관 인데요, 몇년전 저 자신도 워크 비자를 연장하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여권이랑 신청서를 들고, 줄서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데, 저의 바로 앞에는 필리핀 분이 계셨고, 그 앞에는 미국 분이 계셨습니다. 본의 아니게 둘의 대화를 듣게 되었는데, 서로 근무하는 직장이 같은 영어학원 이었나봐요. 미국인은 본국에서 자동차 정비공을 했었고, 필리핀 사람은 고향의 4년제 어느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는데, 둘다 저처럼 워크 비자를 연장하러 온 것이었지요. 드디어 제 차례가 가까워 질 무렵, 필리핀분이 체류기간이 1년 밖에 안나왔다며 담당직원에게 막 화를 내는 겁니다. 본인 앞에 있던 미국인이랑 입사년도등 조건이 거의 같은데 왜 미국인만 3년이 나오고, 자기는 1년만 나오는 거냐고요. 물론 연장년수의 기준은 입국관리국만이 압니다. 의아한것은 둘다 직업이 같은 학원 영어선생인데, 차 고치던 백인은 무려 3배의 연장기간이 허락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난 2021년에는 또, 일본 출입국관리청의 이민자 수용시설에서, 한 스리랑카 여성분이 비인간적인 대우로 인해 사망을 해버리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구금중 몸상태가 좋지 않다고 수차례 알렸는데도 불구하고, 당국이 이를 무시해서 일어났던 일인데요, 사망직전, 침대에서 그 여성분이 떨어져 쓰러져 있는것을 확인하고도, 시설관리자 4명 모두 3시간 이상을 그대로 방치했다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2007년 이후, 일본내 출입국시설에서 대응 부족으로 사망한 수용자는 총 16명이나 된다는데요, 과연 그중에 미국등 강대국 출신은 몇명 이었을까요?
올해 3월, 한 오키나와 주일미군 공군대원이 14세 소녀를 납치해 강간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오키나와 미군들의 성범죄관련 피해자는 올해 상반기만 해도 총 39명 입니다. 오키나와 현민들은 매번 감봉같은 솜방망이식 처벌이 말도 안된다며 분노가 하늘을 찌르구요. 만약 강간범들이 위의 스리랑카라던지 동남아인 이었다면, 과연 일본은 어떠한 처벌을 어느 정도 했을까요? 위 스리랑카 여성의 죄명은 ‘불법체류’인데 그 이유만으로 방치에 사망까지 이르게 할 정도의 대우라면, 스리랑카 남성이 일본인을 강간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오키나와 출신인 그 유명한 가수 아무로 나미에씨는, 왜 일본국가인 ‘키미가요’를 부르는것을 거절할까요.
한국에서의 특정 인종을 향한 헤이트 크라임 관련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백인들은 눈이 파랗고 금발이니까 멋지고 우월하며, 동남아인들이나 흑인들은 왠지 열등한거 같고 더럽거나, 무섭다는 분들은 분명히 계시지요. 이런건 다 뭐란 말입니까.
처음부터 밑도끝도 없이 무지막지하게 공격을 해오는 자들은 틀림없이 인종차별입니다. 용서 못하지요. 문제는, 단순한 호기심이나 미디어를 통한 고정관념때문에 시비를 걸어오는 놈들을 과연 어떻게 봐야 할까, 이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영어를 잘하는 재외 동양인들 중에, 그 단순한 호기심에 의해 트러블에 휘말리거나 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다 생각합니다. 또, 영어를 현지인들 만큼 잘하고, 사회적으로 꿀릴것도 없는 동양인을, 서양인들이 도대체 무엇을 꼬투리를 잡아 차별을 할까요. 그리고, 꼬투리를 잡을것도 없는데 그냥 짖궂게 시비를 걸어오는 종류의 것들이라면, 저희들도 굳이 일일이 격하게 반응까지 해줄 가치는 과연 있는 것일까요.
거듭 강조를 드리지만, 해외에 유학을 간다거나 이주를 한다는것은 인생을 건 도박입니다. 리스크가 따르지요. 그 리스크를 100% 없앨수는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그 ‘백인 여성이나 남성들은 멋지다’ 고 치켜세우는 습관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들중 기고만장해진 놈들은 계속 눈을 찢으며 까불거고, 그리고 인간이란 본능적으로 다 생긴걸로 처음에는 서로를 어느 정도는 판단하는 동물이기에.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본인만의 철학으로, 또는 인생관으로 다소 콘트롤은 할 수 있다고, 저는 제 경험들을 통해 당돌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의 필수조건은 딴건 다 필요없고 가장 먼저가 무조건 일단 현지의 언어 습득, 그 다음이 현지만의 문화의 수용을 가능케 해줄 유연한 사고방식을 갖추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해외생활은 험난하지만, 험난한것이 싫다고 해서 아무생각 없이 조국에서 하던 그대로 사시는 분들이야말로 인종차별도 당하기 쉽습니다. 또, 해외생활이란 고생을 했다면 한만큼 인생을 대하는 새로운 가치관이 생기며, 타인종과의 진정한 교류는 물론, 우물안 개구리들은 죽을때까지 절대 모를, 세상을 보는 ‘눈’도 지닐수 있게 되는데, 이런것들은 또 결코 돈으로는 환산을 못할 정도의 가치를 가지는, 굉장히 소중한 것이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굳게 믿습니다. 이민생활을 하는 본인이 그 나라의 시민으로서 최소한 갖춰야 할 것들을 다 갖추고 있다면, 그렇게 일일이 차별이네 아니네 따지고만 있기에는, 여러분들의 인생은 너무나도 짧으며, 너무나도 아깝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습니다.
길고 주제넘는 글을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상당히 자존감이 높은 분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님은 부정히시지만 제가 보기엔 왕 특이하십니다!
ㅋㅋㅋ 그런가요, 뭐 님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네. 저는 특이한 놈 인가 봅니다….
是非、日本語訳でもお願いします!
読んで頂き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はい、そのうち日本語版も投稿しますね。
반갑습니다! 저도 오클랜드에 살거든요. 혹시 스테빙이라는 회사에 근무하시지 않으셨어요? 당시 한국인 멤버가 있는 밴드가 시내에서 종종 공연을
하길래 잠깐 만나뵙고 이야기도 나눴던거 같은데..
오! 반갑습니다, 오클랜드 어디신지요? 저는 현재는 일본이에요. 당시 스테빙에서 일했던 것도 맞구요.. 어떻게 그때 일을 지금껏 기억해주시고 계시다니…!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님 팔근육이 장난 아닌데요!
…… 예 감사합니다. 그때는 그랬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