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세님 만화 外 몇권

한가한 일요일날 책꽂이 정리를 하다가 발견한 추억의 만화책들 입니다. 설령 만화를 좋아하시지 않는 분들도 무조건 알고는 계시는 이현세님의 만화 몇권과, 그 시절 까치라고 착각을 하여 잘못 구입한 놈 하나, 그 외에 어떻게 지금 집에 있는지 기억조차 안나는 한 권도 덤으로 소개 드립니다.

「모비딕」

이현세님 작품으로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것 같은 작품입니다. 피가 끓는 젊은 형사 오혜성이, 마약수사를 맡게 되면서 온갖 생고생을 겪게 됩니다. 혜성의 영원한 라이벌, 마동탁은 본 작품에서 가학성 변태에다 사이코패스로 묘사되죠. 코믹한 장면은 거의 없다시피한 추리물로서, 시종일관 암울한 분위기가 특징입니다. 누구도 상상못한 충격적인 진실이, 수사과정 전체를 막판에 뒤엎어 버리는 부분이 백미라고 할 작품입니다.

미국 소설가 멜빌의 장편소설 <모비 딕>에서, 거대한 흰 고래를 추적하는 포경선 선장의 집념이, 범인을 잡으려는 우리의 영원한 주인공 혜성에게도 보여집니다. 매사에 철두철미하기가 컴퓨터같은 인간 마동탁선배의 부인에게, 혜성은 연민을 느끼면서도 조금은 흑심을 품어보기도 하는등, 이래저래 이상야릇한 냄새가 나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1999년작.

「춤추는 애벌레」

읽으면서 “아, 나도 이 만화의 주인공 혜성같은 삶을 살고 싶다”고 몇번이나 절 부럽게 만든 작품입니다. 인물 좋고, 머리 명석하고, 유머 감각 뛰어나고 주변에 항상 여자들이 끊이질 않으며, 패기있고 자신감이 넘치고… 왠만한 남성분들의 로망이 이 작품의 혜성을 통해 잘 나타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백두산과 엄지의 공조가 작품의 재미를 배가시키면서, 질리는 일 없이 읽어나갈수 있는 명랑+쾌활 코믹물이라 하겠습니다.

MZ세대가 어쩌고 저쩌고 너무나도 말이 많은 요즘! 대통령이 된다는 어찌보면 터무니없고 엄청난 계획을 세우지만, 그래도 그것을 현실적 그리고 구체적으로 펼쳐나가는 열혈 대학생 혜성의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전5권, 1995년작.

「공포의 외인구단」

말이 필요없죠. 한국 스포츠 만화를 거론할때는 일단 이거니까. 정수라님의 주제곡 <난 너에게>가 너무 좋은 영화도 재미있었는데, 원작인 만화는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무래도 프로야구 초창기였던 80년대와 현재의 KBO사이에는 엄청난 괴리가 있겠지만, 그런거야 뭐…야구에 관심이 없더라도 재밌게 읽으실수 있는 작품이니까요.

ㅋㅋ 손가락을 자르면서 까지 던지던 너클볼, 100게임 연속 안타등, 만화니까 가능하던 표현들 때문에 너무나도 빠져들며 읽었었네요. 당시 <고려가>라는 출판사에서 6권인가 세트로 나왔었는데, 무슨 소설책같이 두꺼웠던게 참 인상적이었어요.

「어른들은 몰라요」

원작이 이규형님이네요. 국딩 시절(쌍팔년도 였음)동명의 영화도 보기는 봤었는데, 필자에게는 임팩트가 적어서 기억은 잘 안나네요. 만화가 영화와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내용은 순수하던 그 시절 선남선녀의 청춘을 그린 연애물 입니다. 여고축제에 초대된 훈남 오빠가 통기타를 치며 부르는 노래에 숨이 넘어가는 여학생들의 모습과, 대사에 등장하는  “짜샤” “웃기는 짜장면”등, 너무나도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표현에 이런저런 추억이 방울방울 떠오릅니다. 1997년작.

표지에 <그림:신천중>이라고 써 있는데도, 주인공이 까치인줄 알고 잘못 사버렸어요. <어른들은 몰라요> 라는 타이틀이, 당시 십대이면서 감수성 예민했던 저에게 참 와닿았던 기억이 납니다. 일단 의외로 재미있게 읽었어요. 90년대 젊은이들의 연애관이라던지, 그 시절 특유의 유머와 위트가 돋보여 쿡쿡 웃음이 나오면서도 신선합니다. 아련한 그 시절, 썰렁한 조크로도 남을 웃길수 있고, 예의상 그런 타인에게 웃어도 주던 따뜻하고 그리운 그 시절!

「빵 아웃사이더」

타이틀이 한국적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조악하게 들리기도 하는 작품입니다. 장르는 미래의(폭력)학원액션물.  2001년작임에도 불구하고, 작가분이 확실히 <북두신권>을 의식하고 그리셨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습니다.  절망만이 가득한 세기말적 배경이라던지, 도저히 고교생이라고는 볼수없는, 현역프로레슬러나 깡패들을 뺨치고도 남을만한 등장인물들의 떡대들도 참 볼만합니다(얼굴들이 거의 아이돌도 저리가라 할만큼 잘 생겼어요. 아이라이너로 진하게 그린듯한 매서운 눈매하며, 현란한 악세서리하며). 주인공은 이름처럼 인생을 그야말로 바람처럼 사는 사나이, “백룡고교(학교 이름마저 force가 쩜)”에 재학중인 “풍호” 입니다. 뭐 “폭력은 폭력으로서 다스려야만 한다”는 식의 우왁스럽고 무지막지한 내용이지만, 왠지 옛날 오락실에서 엄청나게 히트를 쳤던 게임 <Final Fight>나<Double Dragon>이 자꾸만 생각나기도 하고, 어쨋든 그저 계속 읽게 되더군요.

아무 생각없이 사람을 두들겨 패 뭉개버리는류의 만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재미있으실 겁니다. 풍호가 속하는 써클(솔직히 그냥 불량학생들)에 신라시대에 실존하던  “화랑” 제도를 도입한 점등은, 나름 신선하다고 봅니다. 간간히 등장하는 성적인 묘사도, 당시 주류 만화의 흐름으로써는 당연했죠. 이것이 또 당시 자극적인 일본만화등에 쩔어있던 어린 독자들에게도 은근한 즐거움이었으니까. 무슨 등장 여성분들이 하나같이 거유들 뿐이라니까요.

고등학교를 졸업할때 까지만 하더라도 이현세님의 만화를 더 많이 소장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거의 행방불명이 되버려서…지금도 가끔은 꼭 무슨 금단현상같이 미친듯 읽고 싶어지는 때가 있더군요. 특히 재밌게 읽었던 작품은, 재일교포들의 애환을 그린 <남벌>, 공단에서 일하며 꿈과 희망을 갖고 열심히 살다가, 개떼들 같은 남자들 때문에 팔자가 사나워지는 여공들의 이야기 <며느리 밥풀꽃에 대한 보고서>, 만화를 보고 실제로 모방범죄를 실행하여 성공했다는 신문기사가 화제였던 <럭치기>등이 특히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이현세님께서 좀 반일적인 성향도 보이시면서, 남성우월적인 내용의 만화를 꽤 그리셨는데, 현재 17년째 일본에 살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라는 초식남자들만 주변에 들끓는 환경에 있는 저에게, 개인적으로 참 여러모로 와닿는 작품이 많네요. 언젠가 꼭 좀 이현세님 만화 콜렉션이 장단편별로 발매되어 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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